Mankunku Quartet – Yakhal’ Inkomo

Mankunku Quartet의 1968년 앨범 Yakhal' Inkomo 커버 — 테너 색소폰을 부는 Winston Mankunku Ngozi의 흑백 실루엣

Winston “Mankunku” Ngozi — tenor saxophone
Lionel Pillay — piano
Agrippa Magwaza — bass
Early Mabuza — drums

1968년 7월 23일 녹음
Manley Van Niekerk Studios, Johannesburg
Engineer: Dave Challen  Producer: Ray Nkwe
World Record Co.

녹음은 하루만에 끝났습니다

1968년 7월 23일 Johannesburg에서 녹음했고 하루만에 끝냈습니다.
Winston Mankunku Ngozi는 당시 스물다섯살이었고요.
수록곡도 네곡뿐입니다.
자작곡 두곡에 Coltrane의 Bessie’s Blues, Horace Silver의 Doodlin’이 들어있습니다.
전체 러닝타임은 30분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30분이 상당합니다.
Boomkat에서는 Blue Note나 Prestige, Impulse! 카탈로그 사이에 갖다놔도 전혀 밀리지 않을 앨범이라고 평했는데요.
남아공에서 나온 당시 신인 음반을 미국 재즈의 대표적인 레이블들과 바로 비교한거니 꽤 센 칭찬입니다.
막상 들어보면 이건 좀 과한 칭찬 아닌가 싶다가도 금방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1968년 남아공이라는걸 같이 봐야합니다

음악만 들어도 좋은 앨범이지만 당시 상황을 조금 알고 들으면 제목부터 다르게 들립니다.
1964년 Rivonia Trial 이후 Mandela가 수감된지 4년째였고 Robert Sobukwe도 마찬가지였습니다.
Steve Biko가 South African Students’ Organisation의 회장이 되는것도 그해 말이고요.
조직적인 저항운동도 상당히 눌려있던 시기였습니다.

작가 Percy Mabandu는 당시 상황을 두고 1968년의 짐승은 자신만만했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시기에 스물다섯살 흑인 재즈 음악가가 남아공 안에서 이런 앨범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음악의 분위기도 조금 다르게 들립니다.
그냥 잘 만든 하드밥 앨범 정도로만 보기에는 뒤에 붙어있는 이야기가 너무 큽니다.

커튼 뒤에서 색소폰을 불었던 사람이고요

Ngozi의 가족은 Group Areas Act 때문에 Retreat에서 Gugulethu로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인종별로 거주지역을 나누고 흑인들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던 법입니다.
Separate Amenities Act 때문에 공연에서도 인종 분리가 적용됐고요.
1964년 Cape Town City Hall 공연에서는 Ngozi가 커튼 뒤에 앉아서 연주해야 했다고 합니다.
같은해 Green Point Art Centre에서는 아예 Winston Mann이라는 백인식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고 커튼 앞에서는 백인 연주자가 연주하는 시늉까지 했다고 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정말 어이가 없는 장면입니다.

Mail & Guardian의 부고에서는 나중에 그가 자기 호른으로 그 커튼을 태워버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호른은 재즈에서 관악기를 두루 부르는 말이고 실제 악기는 테너 색소폰입니다.
참고로 Ngozi는 자기 색소폰을 Cookie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여자친구라는 뜻이고요.

다들 떠날때 남아있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남아공 재즈 음악가들은 가능하면 나라를 떠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Chris McGregor, Dudu Pukwana, Johnny Dyani 같은 사람들도 London으로 갔고요.
Ngozi는 남았습니다.
이 한줄이 생각보다 꽤 무겁습니다.

피아니스트 Nduduzo Makhathini는 Yakhal’ Inkomo라는 제목을 이 부분과 연결해서 보기도 합니다.
망명한 사람의 외로움은 쉽게 생각하지만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은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요.
같이 연주할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혼자 남아있는 상황을 우리 안에 남은 소에 비유한겁니다.
Bheki Mseleku도 주변 연주자들이 다 떠나서 같이 연주할 사람이 없었던게 망명을 결심한 큰 이유였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 뜻은 지금도 한가지로 정리되지는 않습니다

프로듀서 Ray Nkwe는 당시 슬리브 노트에 이 곡이 Coltrane에게 바치는 곡이라고 적었습니다.
반면 Percy Mabandu의 책에서는 제목을 조금 더 넓게 봅니다.
우는 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소의 울음이기도 하고 동료가 죽는걸 보면서 우리 안에서 날뛰는 소떼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미지는 화가 Dumile Feni가 이 곡에 반응해서 그린 연작과도 연결되고요.
그 그림들은 현재 행방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시인 Mongane Wally Serote가 Feni에게 들은 이야기를 옮기면서 더 알려졌고 Serote는 1972년 같은 제목의 시집도 냈습니다.
정작 Ngozi 본인이 제목을 길게 설명한 기록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마다 자기 방식으로 이 제목을 읽게 되는것 같습니다.
오히려 한가지 뜻으로 딱 정리되지 않는게 이 곡에는 더 잘 어울리는듯 하고요.

모두가 처음부터 좋아했던건 아닙니다

망명중이던 시인 Keorapetse Kgositsile는 이 앨범을 처음 듣고 오히려 실망했다고 합니다.
너무 Coltrane 같고 자기가 기대했던 고향의 소리와는 달랐다는 이유였고요.
재미있는건 이 음반을 그에게 건넨 사람이 Pharoah Sanders와 그의 아내 Tembi였다는 점입니다.
Coltrane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른 Coltrane의 영향을 받은 남아공 음악을 건넨 셈입니다.
이런 연결은 좀 묘합니다.

본인에게는 꽤 아픈 곡이었던것 같습니다

색소포니스트 Kevin Davidson은 Ngozi의 오랜 친구이자 같이 무대에 섰던 연주자입니다.
언젠가 Cape Town Long Street의 Jazz Workshop에서 Ngozi가 반주없이 이 곡을 연주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연주가 끝난뒤 이제는 이 곡을 안불겠다고,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고 하고요.

타이틀곡에서 Lionel Pillay가 피아노 솔로를 할때 Ngozi가 울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2000년대 초 Durban BAT Centre 공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고 합니다.
관객들이 계속 이 곡을 기다리다가 세트 막바지에 베이스 오스티나토가 나오자 바로 반응했고요.
오스티나토는 짧은 음형을 반복하는 연주인데 이 곡은 베이스 몇마디만 들어도 바로 알아챌수 있습니다.
솔로를 끝낸 Ngozi가 무대를 걸어가면서 울고 있었다고 Makhathini는 전합니다.

남아공 밖에서는 정말 잘 몰랐던 앨범이고요

색소포니스트이자 학자인 Salim Washington은 남아공에 와서 이 앨범을 처음 듣고 상당히 놀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 부는 연주자를 자기가 어떻게 모르고 있었나 싶었다는거죠.
그는 이걸 당시 남아공이 얼마나 고립돼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봤습니다.
해외에서 알려진 남아공 재즈 음악가들은 대부분 망명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Washington이 Ngozi를 인터뷰하러 갔을때는 Coltrane이 자기를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실제 방문이 아니라 영적인 방문이라는 의미였고요.
그러면서 Coltrane은 사실 Xhosa 음악가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남아있습니다.
여기쯤 오면 이야기가 꽤 멀리 갑니다.

발매후에는 남아공에서 상당히 많이 팔렸습니다

발매후 5년동안 10만장 이상 팔린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아공 재즈 앨범으로는 상당한 판매량이고요.
Makhathini는 미국에 A Love Supreme이 있다면 남아공에는 Yakhal’ Inkomo가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면 현지에서 이 앨범이 어떤 위치인지 대충 감이 옵니다.

그런데 정작 Ngozi 본인은 이후 거의 20년동안 자기 이름을 건 녹음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1976년 Sunny Hartman 앨범에 가명으로 참여한 정도이고 다음 리더작 Jika는 1987년에야 나옵니다.
현지 음반업계에 상당히 질렸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2009년 10월 13일 예순여섯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2018년이 이 앨범 발매 50주년이었는데 Mabandu는 당시 언론이 거의 다루지 않은것을 두고 꽤 강하게 불평했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유명한 앨범이면서도 이상하게 다시 이야기되는 기회는 많지 않았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재발매반으로 비교적 쉽게 들을수 있습니다

오리지널 프레싱은 수집가 시장에서 상당히 비쌉니다.
다만 2017년 Jazzman이 Holy Grail 시리즈 25번으로 1,000장 넘버링 재발매를 냈고 2021년에는 Mr Bongo에서도 다시 나왔습니다.
원반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지금은 구하기 아주 어려운 앨범은 아닙니다.
원반 가격을 보면 재발매가 꽤 고마워지고요.

2007년 재발매에는 같은 시기 라이브로 보이는 11분짜리 보너스 트랙 Spring도 들어있습니다.
본편과 분위기가 잘 맞아서 이 곡까지 같이 좋아하는 분들도 꽤 있는듯 합니다.

이 앨범은 베이스 두음에서 이미 게임이 끝납니다

스토리를 다 빼고 음악만 놓고 들어도 타이틀곡은 상당히 강합니다.
Agrippa Magwaza가 깊고 넓은 톤으로 짧은 베이스 오스티나토를 잡고 Lionel Pillay의 피아노가 그 위에 화음을 얹습니다.
복잡한 도입도 없이 몇마디만 반복하는데 이게 곡 전체를 붙잡습니다.
남아공 공연장에서 이 베이스가 나오기만 해도 관객들이 바로 반응했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게 아닙니다.
우리로 치면 전주 두마디만 나와도 다 아는 노래에 가까운 위치였던겁니다.

Mankunku의 테너가 들어오면 Coltrane 영향은 확실히 들립니다.
톤이 두껍고 한 음을 길게 밀면서 비브라토와 거친 숨을 섞는 방식도 그렇고, 솔로가 올라갈수록 음을 잘게 쪼개는 부분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냥 남아공판 Coltrane이라고 해버리면 중요한게 빠집니다.
리듬 섹션이 미국 하드밥처럼만 움직이지 않고 반복되는 그루브를 훨씬 오래 붙잡고 있어서 색소폰이 그 위에서 노래처럼 들립니다.
Coltrane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건 사실이지만, 몇분만 지나면 이 밴드만의 모달한 그루브가 더 강하게 남습니다.

Lionel Pillay도 이 앨범에서 빼놓기 어렵습니다.
피아노가 색소폰 뒤에서 코드만 채우는게 아니라 타이틀곡의 정서를 거의 절반쯤 가져갑니다.
Mankunku가 Pillay의 솔로를 들으면서 울었다는 이야기가 남아있는것도 그래서 더 와닿고요.
솔로 자체는 과장되게 감정을 밀어붙이지 않는데 반복되는 베이스 위에서 조금씩 화성을 바꾸면서 긴장을 쌓습니다.
큰 소리로 울부짖는 곡이라기보다 계속 참다가 어느 순간 무너지는 곡에 가깝습니다.

두번째 곡 제목에는 Coltrane과 Wayne Shorter가 같이 들어갑니다

Dedication (To Daddy Trane And Brother Shorter)라는 제목은 영향관계를 아예 숨길 생각이 없었다는걸 보여줍니다.
Coltrane은 ‘Daddy Trane’, Wayne Shorter는 ‘Brother Shorter’입니다.
둘의 어법을 그대로 베끼는 곡이라기보다 당시 젊은 테너 연주자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적어놓은 표지판 같은 제목이고요.
타이틀곡보다 조금 더 직선적인 재즈 연주라 Mankunku의 프레이징을 비교해서 듣기도 좋습니다.

B면에서는 더 노골적으로 미국 재즈 레퍼토리를 가져옵니다.
Horace Silver의 Doodlin’은 원래부터 블루지하고 펑키한 곡이라 이 밴드와 잘 맞습니다.
반대로 Coltrane의 Bessie’s Blues는 원곡과 비교해서 들으면 Mankunku가 영향을 어떻게 자기 톤으로 소화했는지 들립니다.
자작곡 두곡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B면에서는 자기가 좋아한 미국 재즈를 연주하는 구성인데 한장으로 들으면 전혀 따로 놀지 않습니다.

‘저항음악’이라고만 부르면 오히려 음악이 작아집니다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배경이 워낙 강해서 이 앨범을 설명할때 정치 이야기가 앞에 나오는건 어쩔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들으면 슬픔만 있는 음반은 아닙니다.
그루브가 있고 스윙이 있고 중간중간 꽤 밝게 튀는 순간도 있습니다.
남아공 재즈를 이야기할때 자주 나오는게 이런 부분입니다.
억압적인 상황에서 만들어졌다고 음악까지 계속 어둡기만 한건 아니고, 춤추고 웃는 감각이 같이 남아있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세게 들립니다.

그래서 지금 처음 듣는 사람들도 역사적 가치 때문에 참고 듣는 식은 아닌듯 합니다.
뒤늦게 이 음반을 발견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왜 이제 들었지’ 싶은 앨범으로 자주 꼽히고, 남아공 재즈를 처음 파기 시작할때 입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50년 넘은 지역 명반이 지금은 세계 어디서든 바로 들을수 있는 입문반이 된 셈입니다.

Spring까지 이어서 들으면 Mankunku의 다른 얼굴도 보입니다

이 앨범이 마음에 들었다면 Ibrahim Khalil Shihab Quintet의 Spring도 거의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Mankunku가 참여했고 같은 시기 남아공 재즈의 결을 조금 더 넓게 들을수 있습니다.
Yakhal’ Inkomo 다음에 이 음반까지 이어서 듣는 사람도 꽤 많은듯 합니다.
한장의 전설적인 음반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당시 Cape Town과 Johannesburg 주변에서 어떤 연주자들이 서로 연결돼 있었는지 따라가기 시작하면 디깅할게 갑자기 많아집니다.

결국 이 앨범의 가장 이상한 점은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등에 업고 있는데도 음악 자체가 전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겁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몰라도 첫 베이스 리프가 좋고, Mankunku의 생애를 몰라도 테너 톤이 귀에 걸립니다.
배경을 알고 다시 들으면 그 다음부터 의미가 계속 붙고요.
좋은 역사자료이기 전에 그냥 좋은 레코드입니다.
이게 1968년 음반이 아직도 계속 새 청자를 끌어들이는 가장 큰 이유인것 같습니다.


A
1. Yakhal’ Inkomo  8:53
2. Dedication (To Daddy Trane And Brother Shorter)  10:15

B
1. Doodlin’  6:04
2. Bessie’s Blues  7:35

한면에 20분 안팎밖에 못 담기던 시절이라 앨범도 지금보다는 면 단위로 듣는 흐름이 훨씬 중요했습니다.

듣기
YouTube — Yakhal’ Inkomo (타이틀곡, 공식 음원)
Bandcamp — 전곡 스트리밍 (Mr Bongo)
Spot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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