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John Coltrane의 Ascension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거의 전부가 소음이었습니다. 누가 솔로를 하는지도 몰랐고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악을 쓰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좋고 나쁘고를 판단할 단계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걸 대체 어떻게 듣는 거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에는 이 음반이 최애 중 하나가 됐습니다. 음악은 그대로였고 제가 듣는 방법만 조금 달라졌습니다. 화성 이론을 공부해서가 아니라 한꺼번에 다 들으려는 짓을 그만둔 뒤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곡 전체가 주는 에너지만 버티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계속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색소폰 하나를 골라 그 소리만 듣고, 다음에는 드럼만 듣고, 다시 처음부터 틀어 다른 연주자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니 한 덩어리였던 소리가 조금씩 나뉘었습니다. 누가 앞으로 나왔을 때 나머지 연주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솔로가 끝나고 합주가 다시 시작될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도 들렸습니다. Ascension은 복잡하지만 솔로가 차례로 나오는 구조라 연주자들의 차이를 확인하기에는 오히려 직선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Pharoah Sanders의 솔로는 지금도 원픽에 가깝습니다. 색소폰이 어디까지 이상한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끝까지 밀어붙이는데, 거의 아기 울음처럼 들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쁘거나 편안한 소리는 전혀 아닙니다.
그런데 그 톤이 너무 분명해서 한 번 알고 나면 다른 사람과 헷갈리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소음의 일부였던 소리가 나중에는 이 음반에서 가장 기다리는 부분이 됐습니다. 이름을 알아서 좋아한 게 아니라 그 미친 소리를 먼저 좋아했고, 나중에 그게 Pharoah Sanders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 경험 때문에 재즈를 ‘이해한다’는 말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코드 진행을 분석하고 이론을 설명할 수 있어야 이해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경우에는 누가 어떤 톤으로 연주하는지 구별하고, 어떤 리듬과 에너지에 반응하는지 알게 된 일이 훨씬 컸습니다. 연주자의 이름과 세션을 알면 듣기가 더 재미있어지지만 지식 자체가 감상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음악이라고 배워도 소리가 재미없으면 손이 잘 안 갑니다.
같은 프리 재즈 안에서도 Pharoah Sanders는 엄청 세게 들리는데 Ornette Coleman은 상대적으로 덜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둘의 수준을 비교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냥 제 취향이 그런 겁니다.
아직 Ornette의 맛을 제대로 몰라서 그럴 수도 있고, 몇 년 뒤에는 완전히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안 맞는 음악을 억지로 계속 듣고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음악은 이미 끝도 없이 많고 죽을 때까지 다 못 듣습니다. 취향이 좁아질까 걱정은 하되 모든 명반을 정복하겠다는 식으로 들으면 금방 피곤해집니다.
제가 음악을 들을 때 자주 쓰는 기준은 레이어입니다. 말이 좀 거창하지만 별것 아닙니다. 악기별로 소리를 나눠 듣고, 지금 앞에 있는 소리와 뒤에서 반복되는 소리를 구별하고, 둘의 관계가 바뀌는 순간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처음부터 열 개를 다 들으려 하지 않고 하나만 골라도 됩니다. 베이스만 들어도 되고 하이햇만 들어도 되고, 이상하게 귀에 걸리는 전자음 하나만 계속 들어도 됩니다. 그 한 가지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 소리와 부딪히는 다른 소리도 자동으로 들립니다.
레이어는 악기 수와 같은 말도 아닙니다. 데스메탈을 멀리서 들으면 거대한 소음 한 덩어리인데 집중하면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이 생각보다 단순하게 나뉠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트랙이 수십 개 들어간 팝 음악도 모든 소리가 한 멜로디와 한 감정을 강조하는 데만 쓰이면 평평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Thelonious Monk의 솔로 피아노는 악기가 하나뿐인데 몇 마디 안에서 리듬과 쉼이 계속 충돌합니다. Sun Ra의 빅밴드는 소리가 터질 만큼 많은데 어느 순간에는 한 덩어리의 질감으로 들립니다. 같은 음반도 한 번은 드럼을 듣고 다음에는 베이스를 들으면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런 음악은 틀어놓기만 해도 분위기는 좋지만 제가 좋아하는 재미를 제대로 느끼려면 어느 정도 집중해야 합니다. 공부하듯 정자세로 앉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 곡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리듬이 어떻게 바뀌는지, 어느 악기가 갑자기 튀어나오는지 정도만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정답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드럼을 들었으면 다음에는 색소폰을 들으면 되고, 아무것도 안 들리면 그냥 꺼도 됩니다. 음악 듣는 데까지 숙제처럼 굴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스피커나 헤드폰, 앰프가 있으면 이 과정이 편해지는 건 맞습니다. 악기의 위치와 음색, 잔향이 분명하게 들리면 고를 수 있는 소리가 늘어납니다. 그렇다고 비싼 오디오가 있어야 프리 재즈를 들을 자격이 생기는 건 당연히 아닙니다. 이어폰으로도 에너지는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장비는 안 들리던 음악을 갑자기 좋은 음악으로 만드는 물건이 아니라, 이미 재미있게 듣는 소리를 조금 더 자세히 확인하게 해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곡 밖의 정보도 도움이 됩니다. 누가 연주했는지, 어느 시기에 녹음했는지, 다른 세션에는 누가 있었는지 알고 들으면 비슷한 톤을 비교하기 쉬워집니다. Miles Davis나 John Coltrane 한 사람만 봐도 연결되는 연주자가 미친 듯이 많습니다. Sun Ra의 방대한 음반이나 남아공 재즈, 유럽 재즈도 사람과 세션을 확인하면서 들으면 처음보다 훨씬 덜 막막합니다. 이건 음악을 이해하기 위한 시험공부라기보다 다음에 뭘 들을지 정하는 덕질에 가깝습니다.
대충 예상한 소리가 나오는 경우가 80퍼센트라면 나머지 20퍼센트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튑니다. 그 20퍼센트 때문에 계속 찾아듣게 됩니다. Sun Ra의 Disco 3000이나 Herbie Hancock의 Mwandishi 시기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분명 알고 있던 사람인데 제가 예상한 방식과 전혀 다른 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다음에는 앨범 한 장으로 끝나지 않고 같은 시기의 세션과 참여 연주자까지 확인하게 됩니다. Eddie Henderson, Joe Henderson, McCoy Tyner, Joe Zawinul 같은 이름도 그런 식으로 계속 추가됐습니다.
바이닐을 모으는 건 가장 효율적인 청취 방법과는 거리가 멉니다. 더 많은 음악을 좋은 음질로 들으려면 무손실 스트리밍이나 시디가 훨씬 편하고 돈도 덜 듭니다. 그래도 12인치 커버를 직접 보고 판을 꺼내 올리는 재미는 화면으로 듣는 것과 다릅니다. 평소에는 스트리밍으로 넓게 듣고,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싶은 날에는 바이닐을 꺼냅니다. 판을 뒤집어야 하니 적어도 한 면 동안은 다른 앨범으로 도망가지 않게 됩니다.
제비사운즈에 글을 쓰는 것도 비슷합니다. 모든 음악을 정리하거나 대단한 평론을 하려는 게 아닙니다. 어떤 앨범을 듣다가 어떤 연주자를 알았고, 그다음에 무슨 음반을 샀는지 기록하려고 만든 곳입니다. 곡 안에서는 악기 하나씩 나눠 듣고 곡 밖에서는 세션과 레이블을 확인합니다. 그렇게 듣다 보니 바이닐이 늘었고, 커버를 따라 그린 조명까지 만들었고, 그러다 사이트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냥 덕질이 커진 겁니다.
이 방법을 처음 재즈를 듣는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바로 재미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아직 구별되지 않는 소리를 골라 들으라고 하면 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대신 같은 음악을 들은 사람끼리 “나는 여기서 색소폰보다 드럼이 더 웃겼다”거나 “이 부분은 시끄러운 게 아니라 이상하게 차분했다”고 얘기하는 건 재미있습니다. 같은 음반에서 서로 다른 걸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확인할 부분이 생깁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필요도 없고 취향을 설득할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 Ascension을 듣던 때로 돌아가도 음악 공부부터 하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색소폰이든 드럼이든 하나만 골라서 들어보라고 할 겁니다. 그래도 아무 맛이 안 나면 끄면 됩니다. 다른 음악 듣다가 몇 달 뒤 다시 틀어보면 됩니다. 저도 그렇게 다시 들었고, 처음에는 소음이던 앨범이 지금은 최애가 됐습니다. 이론보다 먼저 바뀐 건 귀를 어디에 둘지였고, 그다음부터 이 시끄러운 음반이 존나 재미있어졌습니다.